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강 방어선 전투 (문단 편집) ==== 노량진 전투 ==== 이날, 제7사단(장, 유재흥 준장)의 방어정면인 이 지역의 강안에 올라붙은 적을 격퇴키로 한 노력은 큰 성과를 얻지 못하였으나, 현 전선은 그대로 고수하였다. 제9연대(장, [[윤춘근]] 중령)는 전날 밤의 사단의 명령에 따라 날이 밝은 다음인 10:00에 목표 ㉯ 고지를 지향하여 공격을 시작하였으나, 대안에서 노려보는 적의 포화에 행동의 제약을 받게 되어, 오히려 병력손실만을 보게된 나머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 고지의 본진으로 반전하고 말았다. 그리고 역시 전날 밤에 사단장으로부터『㉮고지―수도고지의 능선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은 제25연대 제2대대(장, 배운용 [[소령]])는 대대장의 진두지휘하에 2개 중대로써 수도고지 부근에서 목표능선으로 나아가다가, 밤 사이에 동 능선에 숨어든 적 1개분대규모와 격돌케 되었으나 이를 단숨에 무찌르고 목표를 점령하였는데, 대대가 그 능선위에 올라서는 순간에 강 건너로부터 [[박격포]]탄이 쏟아져서 대대장 배운용 소령이 전사하는 등 적지 않은 병력손실을 입게 되었다. 이에 선임자인 제8중대장 김백영 대위가 대대를 지휘하여, 우측으로 제9연대 제1대대와 좌측으로 제15연대 제3대대와 나란히 고수태세로써 날을 보내었다. 한편, 노량진역 부근을 중심으로 강안에 배치된 공병대대의 지휘소인 월파정에 아군복장을 한 적 1개 분대규모가 침투하여 이를 탈취하려 하였는바 이들과 전투중에 동 대대장 엄재완 소령이 흉부에 관통상을 입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동 공병대대는 [[안양시|안양]]으로 철수하고, 제20연대 제1대대가 사육신묘를 중심으로 재배치되어, 적이 철교쪽으로 도강하는 것을 막게 되었는데 동 묘소가 있는 고지정상에 자리를 잡은 연대 지휘소에 적의 포탄이 집중됨으로써 S-2인 김상칠 중위가 전사하고 S-3인 박정식 중위가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또한 강완채 대위가 지휘하는 제1연대의 혼성대대는 중대장 전상재 중위가 전사하는 혈전을 벌인 끝에 여의도의 비행장쪽에서 급습하는 적을 막았는데, 밤에는 복선철교위에 기관총으로 무장된 기관차가 나타나 철교에 교판부설 작업을 실시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동 대대가 보유한 60㎜ [[박격포]] 2문으로써 그들을 방해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적이 이렇듯 철교의 입구쪽으로 공격력을 증강하여 동 철교를 감제하는 [[사육신]]묘와 월파정을 확보코자 한 것은 이 복선철교상의 교판작업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뒷날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적은 전날 아침에 [[철교]]의 중간단선으로 [[전차]]를 도하시키려다가 미 공군의 항공폭격으로 좌절되자, 이날부터 서울 시민과 철도 선로반원을 강제로 동원하여, 29일에 [[공병]]이 그 남쪽 교대의 연결부분을 파괴한 경부복선철교에 새로운 교판부설 작업을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이날 수도 육군병원의 제7사단 지휘소가 적에 노출된 듯 전날의 수도사단과 마찬가지로 포화가 집중됨으로써 더 이상 지탱치 못하고, 한걸음 물러나서 그 남쪽 600m 서울 공업중학교에 지휘소를 다시 개설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